폭풍처럼 다가온 50년의 여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암호명 '폭풍'. 한국군은 제대로 방어할 새도 없이 무너졌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암호명 '폭풍'. 한국군은 제대로 방어할 새도 없이 무너졌다. 북한의 기습, 미아리 방어선의 붕괴, 한강교 폭파. 6월 28일 새벽 5시, 인민군의 서울 입성. 개전 3일만이었다. 이어진 북한의 공격은 약 1달 만에 경상도의 일부를 제외한 전 남한을 장악했고 1950년 한반도의 여름은 '폭풍'처럼 몰아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인민군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남하할 수 있었는가. 개전 직후 미국과 소련의 반응은 어떠했으며 전쟁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자세는 어떠했는가. 국군은 인민군에 밀려 일방적인 후퇴만을 거듭했는가. 국군은 인민군에 어떻게 맞섰는가. 영천 수복과 함께 전쟁의 위기는 한차례 물러가는 듯 했다. 6월 25일 개전부터 치열했던 50년 여름에 대한 역사적 기록. 그러나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